정선오지교회
정선군을 돌아보며 안타까웠던 일들 중 하나는
인근에 있는 카지노에 발을 디디었다가 가산을 탕진하고
끝내 스스로 생명을 포기하는 군민들이 있다는 소식이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카지노는 때때로 기계 로부터 쏟아지는 돈과 축포와 함께
울려대는 기계음이 탐심을 더욱 자극하며 빠져들게 한다.
미국에 이민을 와서 라스베가스에 들리게 되면 심심풀이로
기계 앞에 앉아 요행을 바라는 마음으로 푼돈을 날리고는 했었다.
돈벌이를 위하여 만들어 놓은 기계와 다투며 일확천금을 꿈꾸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이따금씩 터지는 돈에 맛이 들어 빠져나오지 못하고 게임에 끌려 들어가 땀 흘려 벌어 놓은 돈을 잃게 된다.
모든 것을 탕진하며 결국 목숨까지 던지는 일들은 중독이 가져오는 안타까운 일이다.
여러 날들을 정선의 오지 마을들을 걸어 다니며 그들의 삶의 현장들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도 내가 찾던 소외되고 절망에 처한
절박한 한계 상황과 마주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여주실 것만 같았던
삶의 한계 상황에 있는 오지의 사람들을 만나지 못함에 따라
답답하여지는 마음을 하나님께 쏟아 내며 주님의 얼굴의 구하는 시간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내 마음 한쪽으로부터 미국에서 예약이 된
오지 교회 목사님을 만날 때가 되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연락은 받은 목사님께서 흔쾌히 주말에 교회로 방문하여 주기를 청하신다.
그곳은 오지 중에서도 오지인 것 같았다.
이제 정선을 웬만큼 돌아다녀 보니 지도만 보아도
그 동네의 지형이나 삶의 그림들이 제법 그려진다.
영월 봉화군과 근접된 그곳은 정선군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약속한 날 시간을 지키기 위하여 예행연습 삼아 대형 마을버스를 타고 답사를 하였다.
그곳에 가는 버스는 학생들 등하교 시간대에 아침과 저녁 두 번 뿐이었다.
이제 터미널에 가면 노선버스 기사님들이 외지에서 온 나를 반갑게 맞아준다.
‘안녕하세요? 미국 아저씨, 아직도 오지 마을들을 다니시나 봅니다?’
하며 다른 오지 마을들을 추천하여 주시고는 하였다.
여기저기 다니며 그곳의 빈집들을 돌아보기도 하였다.
그곳에서의 삶의 비용들을 맞추어 보기 위함이다.
대부분의 빈집들은 몹시 낡고
태풍과 오랜 시간에 걸친 자연 훼손 등으로 망가져 있었다.
대대적으로 손을 보아야 들어가서 몸을 누울 수 있는 곳들이었고
화장실은 별도에 마련된 재래식 변소였다.
이곳에도 외지에서 귀농 귀촌으로 이주한 집들이
여기저기 예쁜 모습으로 들어와 자리 잡고 있었고
그러한 집들로만 이루어진 마을도 드물게 눈에 띄었다.
오지 마을 종점에서 내려
들에서 일하는 분들과 어쩌다 마주치는 행인이 있으면
교회 위치를 물어물어 찾아갔다.
워낙 한적한 곳이라 교회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교회에 가보니 인적이 없다. 평일이라서인지 적막함만이 나를 맞아 주었다.
나는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고는 교회 정문을 열어 보았는데 마침 잠겨있지 않았다.
기쁜 마음으로 들어가 하나님께 기도를 들렸다.
이곳까지 올 수 있게 하심을 감사드리며
나를 혼자 두지 마시고 주님 가신 그 길을 나도 따라가기를 원하오니
끝까지 인도하여 주시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정처 없는 나그네 길에 지쳐서인지 눈물이 쏟아져 내린다.
하지만 주님의 뜻을 좇아 혼자이면서도 외롭지 않게
주님과 함께 오지 탐방을 할 수 있는 건강을 주심이 감사하였다.
곳곳에 도움의 손길들을 예비해 놓으신 주님을 향한 감사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주말이 되어 선약이 된 목사님을 만나러 오지 마을로 향하였다.
알 수 없는 기쁨이 나의 마음에 차오르며 평안한 마음으로 충만하여진다.
오지 마을 목사님은 젊은 나이 신대원 시절에 이곳 정선에 오지 선교를 하러 왔다가
하나님의 만지심으로 이곳에 마음이 묶여 오십을 넘겨 가며
이곳에서 섬김의 사역을 하고 계신 분이었다.
목사님과는 토요일 두시쯤에 교회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목사님은 서울에서 사모님과 함께 내려오는데
고속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한 시간 늦게 만날 수 있었다.
잘 지어진 아름다운 교회 아래층에
사택과 식당과 단체 손님들이 묵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목사님은 오시자마자 일이 바쁘셨다.
영월군 근처 은행에 농사일 관련하여 마무리할 일이 있다고 하시며
이야기도 나눌 겸 같이 가자고 권하 신다.
흔쾌히 목사님 차로 출발을 하였다.
가다 보니 조그마한 굴이 하나 나온다. 매우 작아 보였다,
아니 저 굴을 어찌 지나가려나? 하며 의아하게 생각을 하는데 차가 멈추어 섰다.
지금 반대편에서 차가 굴을 통과하여 오고 있기 때문에
푸른 신호가 켜지면 그때 가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살펴보니 굴 위에 빨간 등과 파란 등이 두 개 있었고 빨간불이 켜져 있었다.
잠시 후에, 차 한 대가 빠져나와 지나간다.
이어서 파란 불이 들어왔고 우리들이 타고 있는 차가 굴 안으로 진입하였다.
한 대만 지날 수 있는 좁은 굴이었고 길이는 1km 길이쯤으로 느껴졌다.
굴을 나오니 작은 공장들이 몇 개 눈에 들아 왔고
읍 소재지쯤 되어 보이는 작은 도시가 눈에 들어왔다.
은행 일을 마친 후 근처 허름한 짜장면 집에 가서 한 그릇씩 나누었다.
시골 마을이라서인지 아주 옛날에 먹어 본 그 짜장 맛이었다.
목사님은 이 주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다.
교회에서 이곳까지는 삼십 분쯤의 거리가 되는 것 같았다.
이곳에는 중소 규모의 공장들이 여럿 있기 때문에 외국인 근로자들이 더러 살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 이민생활을 하여온 터라 그들의 어려움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을 만나보고 싶다.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함께 나누고
그들에게 그분의 생명의 복음을 말씀으로, 삶으로, 전하여 주고픈 마음으로 설렌다.
목사님은 처음 만난 나에게 이곳에 와서 함께
마을 사람들을 섬기고 주님의 일을 섬기자고 제안을 하신다.
참으로 마음이 넓으신 분이시다. 늙수그레한 나그네를 흔쾌히 받아 맞아주고 계신 것이다.
교회에 돌아가 보니 소수의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사모님과 장로님 내외분이 와 계셨다.
토종닭을 잡아 맛난 백숙으로 저녁을 나누고
목사님께서 준비하신 차를 나누며 이야기 꽃을 피운다.
차를 마시는 동안에 오지 마을로 귀촌을 원하는 두 분이 합세하여
귀농 귀촌에 관하여 목사님과 상담을 하는 것을 귀동냥으로 들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목사님은 이제 귀농 귀촌의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또한 이곳에서 블루베리 농장을 일구어 성공적으로 수확을 하고 있었다.
블루베리가 허약한 오지 마을 교회를 섬기는 일에 큰 힘이 되어주고 있는 듯하였다.
이렇게 오지 교회 사람들과의 만남이 순적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참으로 꿈만 같았고 언제나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늘 함께하여 주심에 감사가 넘쳐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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