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주의 이야기(책)/창조주를 볼 수 없는 영적 장애(연재)

세상에 속한 자(1)

사랑배달부 2020. 8. 24. 02:18

 

 

 

세상에 속한 자

 

나는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학교에 다니듯

감리교회에 출석하여 예배하고 말씀 듣고 여름 성경학교에 꼬박꼬박 참석하며

각종 성경 암송대회 가족 찬양대회 등 기독교의 문화속에서 자라왔다.

국민학교와 고등학교를 기독교 학교에서 다녔다.

할아버지는 장로님이셨고 할머니는 권사님이셨다.

할아버지의 신앙과 믿음에 대하여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는데

할머니는 어릴적 기억을 더듬어 보니 정말로 신실하고 견고한 믿음을 갖고 계셨던 것 같다.

오전 에는 언제나 단정한 모습으로 앉아 찬송을 부르시고 성경을 읽으셨다.

그리고 기도하셨다. 아마도 아침을 드신 후 오전 내내 그리 하셨던 것 같다.

지금도 그 힘차고 카랑카랑한 할머니의 기도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다.

우리도 어려운 살림이었지만 언제나 더 어려운 이웃들을 살피고 도와주셨다.

 

어릴 적 부친께서는 기독교 학교에서

목사직과 주말에 파트타임으로 교회 목회도 하셨다.

이 당시에는 목회자들이 배고프고 가난한 시대였다.

교인들도 가난하고 교회 규모도 작아서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도 당연히 적어 교회에 돈이 별로 없었다.

이에 따라 신학과도 인기가 없었고 지원하는 학생이 별로 없어 경쟁이 심하지 않았다.

 

나는 재수생 시절부터 교회를 멀리하게 되었지만

이따금씩 지역교회에 출석하여 예배를 드리곤 하였다.

교회를 잘 안다니던 나를 염려하는 누나와 함께,

때로는 아버지와 함께 가끔씩 교회에 나갔으며

신학교를 졸업한 작은 형이 경기도 수원 근교 농촌에 있는 작은 교회를 섬기게 되어

형과 친하게 지내던 나는 형을 만날 겸 그 교회에 자주 들렸었다.

이때야 말로 어릴적 습관으로 불편함이 없이 때에 따라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곤 하였지만

한 시간이 왜 그리 지루하고, 설교시간은 왜 그리 졸 리운지,

헌금 시간이 지나고 기도할 때쯤이면 미리 교회를 빠져나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교회를 떠나면 교회 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육신의 욕심을 쫓아 방황 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물론 이당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에 대하여 수없이 들었지만

그냥 스쳐 지나갈 뿐 그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도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내가 죄인인지 아닌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군 복무를 마치고 뒤늦게 대학공부를 마친 후에,

대기업에 일자리를 잡은 나는 입사동기 중 나이가 제일 많았다.

제일 어린 입사동기와 일곱 살이나 차이가 났다.

이러한 핸디캡으로 쉽지 않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결혼도 하고 아이들도 생겼다.

이무렵에, 세상으로 치닫는 나의 생활로,

하나님의 사랑과 존재를 어렴 풋이 느낄 뿐, 하나님을 잊고 살아가게 되었다.

다행히 아내가 아이들을 교회에 데리고 다녔지만

나는 아이들의 교회 생활에도 관심이 없었고

직장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하여

주말이면 들로 산으로 물가로 가족과 함께 나들이하기에 바빴다.

주일(일요일)도 야외에서 지내는 때가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나의 삶을 아버지와 누님들 그리고 형님들이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많은 기도를 하셨을 게다.

지금 생각하면 아이들의 성장기 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해 주며

함께 기도하지 못한 시간들이 많이 아쉽지만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고 양육하여 주셔서

자녀 둘 다 믿음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생활이 진행되는 동안에, 한국교회는 놀랍게 성장을 하였다.

대형 교회들이 생겨나고 교회들이 양적인 팽창을 거듭하였다.

목회자들의 세상적 지위는 드높아지고 생활도 궁핍함에서

사치스러울 정도의 호화 스러운 생활을 하는 목회자들이 늘어났다.

이러한 목회자들의 목에는 자연히 힘이 들어 있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과 사랑은 없어 보였다.

내가 어릴적 무심코 들어온 그리스도인과 목자의 삶 하고는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아마 지금 무신론자나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기독교가,

특히 목회자가,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도

이와 비슷한 상황 이리라 이해하고 있다.

 

이 무렵에는 나 역시 누가 물으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였다.

교회는 잘 안 나가지만 내 안에 하나님께서 계신 것을 어렴풋이 느꼈기 때문이다.

당시에, 나의 생활은 일반적인 한국 직장인의 생활문화이지만

그리스도인과는 거리가 먼 생활이었다.

세상에 속한 자의 삶 이었다.

 

전날의 술과 피로에 찌든 몸을 달래며

시간에 맞추어 정확히 일어나 차를 몰고 회사로 향한다.

타인으로부터 책을 잡히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며 살아가던 나의 성격으로 지각을 피하기 위하여,

그리고 복잡한 상황을 피하며 살기를 즐겨하는 이유로 오전 8시가 출근시간이지만

여유 있게 7시에서 7시10분이면 회사에 도착한다.

조금만 늦게 출발하여도 출근시간은 많이 길어져서 이래저래 피로감이 더 쌓인다.

차도 안 밀리고 엘리베이터도 텅 비어 있다.

신문을 보고 하루 할 일을 점검 해보고 밀린 일들을 챙겨보는 것으로 일을 시작한다.

전쟁과도 같은 일과가 시작되고, 저녁이 되어 일이 끝나면

주로 회사 근처에서 삼삼 오오 혹은 단체회식 등으로

소주와 맥주를 곁들인 저녁식사를 하고 어떤 날은 중국술과 함께 중국음식을 즐긴다.

왁자지껄한 시간이 끝나면 2차로 나이트 클럽이나

가라오케 룸살롱을 찾아 거나하게 술판들을 벌 이곤 하였다.

또는 당구장이나 기원, 볼링장을 찾기도 하고

사우나와 음식점 등의 방에서 고도리 판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 당시에도 화가 많이 쌓여 있던 나는 드물게이지만

술자리에서 상대를 가리지 않고 싸움을 하기도 하였다.

집에서는 남편만을 바라보며 정해진 월급으로 규모 있게 생활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잊은 채로

이따금 거래처 접대로 어떤 때는 접대를 받으며 술자리에 함께할 때도 있지만

주로 직장 동료들과의 어울림이나 회식 등으로 늘 이루어지는 반복적인 생활이었다.

사탄이 의도하는 육신의 향락과 욕심에 빠져 지냈던 것이다.

세상일에 매달리며 세상에 속한 삶을 살아갔다.

 

신도시에서 목회를 하는 친구 목사님이 찾아왔다.

중학교 때 가깝게 지내었고 교회로 인도하여 같이 다니기도 하였다.

그 친구는 나와 만나 오랫만에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나의 영적 상태를 금방 알아채고는 ‘종현 아,

우리 소년시절에 네가 나에게 전도를 하여 교회에 나가 예수님을 만나고 목사가 되었는데

이제는 내가 너를 하나님께 인도하여야겠구나’ 하였다.

‘응 그래?’하며 떨떨한 기분으로 받아 넘겼다.

 

지금 생각하면 고3과 재수시절을 통한 깊은 방황의 세월을 통하여

그리고 직장생활을 하며 지내온 세상에 속한 삶을 통하여

하나님은 나를 깨뜨리시고 무너뜨리고 계셨다.

나의 넘치는 자신감과 자만심을 부수고 또 부수어 가셨다.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힘들게 하시며 점점 나약한 나로 서서히 몰고 가셨다.

그럴수록 술에 의존하는 버릇이 생겼고 이곳 미국으로 이민 오기 전 4년 간을

부산경남지사에서 일하는 동안 거의 매일 술을 마시며 지낸 것 같다.

술에 강한 나도 아니고 술을 즐기는 체질도 아니지만

어찌하다 보니 이런 생활에 젖어들게 된 것이다.

이른 새벽에 만취가 되어 집에 가면서,

술에 약한 내가 이렇게 살다가 이제 곧 죽겠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하였다.

좀 늦게 태어난 둘째아이는 아빠를 주말에만 만나게 되다 보니

동네 아저씨 보듯 서먹해하며 슬슬 피해 다녔다.

 

하나님은 이러한 나의 삶을 미국으로 이민을 하게 하시어 정리하게 하 셨다.

이 무렵에, 큰형으로 부터 전화가 자주 왔다.

미국 이민이 승인된 후 3년이 지나면 효력이 없어지는데

6개월밖에 남지 않았으니 한 번 심사숙 고해 보라는 주문이었다.

회사의 일에도 지쳤고 술에도 지쳤고 하나님께서 나를 자꾸만 약한 자로 몰고 가시면서

많은 허전함과 허탄한 마음을 지니고 있을 때였다.

 

그래 이제 다른 세계로 나아가 새로운 삶을 살아보자.

아이들이 초등학교 6학년, 유치원 학생인데

끝까지 잘 교육 받도록 뒷 바라지를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자신이 없었다.

지금껏 한국에서 15 년 직장생활을 열심히 하였으니

이제 미지의 미국 땅으로 건너가 60세까지

또 다른 15년간을 새롭게 살아보자 하는 마음이 굳어지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아내는 이민에 대하여 매우 부정적이었으며

미국의 ‘미’ 자도 듣기 거북해 하였다.

이러한 아내를 틈만 나면 광안리 해변가를 산책하며 설득하였다.

나만 믿고 가면 된다고, 아이들한테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으니 가서 살아보자고 하였다.

 

그때만 하여도 나는 아무거나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분당에 아파트가 한 채 있었고, 퇴직금도 좀 갖게 되니

아직 40대 중반의 나로서는 이민의 길이 별로 두렵지 않았고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회사 문화와 술 문화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세상에 속한 자는 하늘나라의 영광을 모른다.

육신의 욕심에 따라 세상의 것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남보다 더 가진 것에 대하여 즐거워하고 평안해하며

나보다 더 가진 자를 부러워하고 나보다 못 가진 자를 업신여기며 무시한다.

못 가진 것에 대하여 불안해하고 아쉬워하며 화를 낸다.

가진 자에 대하여 적개심을 품기도 하고

가진 자나 못 가진 자나 조금이라도 더 갖고 누리기 위하여

때로는 속이기도하고 남을 해치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죄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

 

약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세상에 속한 마음은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태어나는 죄로 물든 본성이다.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살아감에 따라 세상 것에 욕심을 내며 살아가게 된다.

욕심은 죄를 낳는다. 또한 죄로 인하여 영영 벗어날 수 없는

사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살게 된다.

우리는 어찌하여 고단하고 화나고 슬프고 허전한

끝없는 방황의 세월을 보내며 살아가게 되었을까?

왜 채워도, 채워도 허전한 마음은 채워지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는 우리들 모두의 마음에 죄가 있기 때문이다.

 

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전 7:20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 이로다

 

모든 사람이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함은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없음이며

이로 인하여 내가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깨닫지 못한다.

세상 어느 누구도 육신을 입고 있는 한 죄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한 명도 없다.

 

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나는 삶에 지쳐서 심신이 망가졌으며

천국에 대한 소망도 지옥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다.

천국에 못가면 죽은 후에 끝인지 알고 있었다.

 

태어나는 것도 내 마음대로 난 것이 아니듯,

죽은 후의 것도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죽은 후에는 누구나 다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게 된다.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계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씀하신다.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며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말씀하신다.

 

롬 6:23 후반부에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해 얻는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사탄은 순간적인 쾌락과 즐거움을 미끼 삼아

우리를 유혹하여 죄악의 덫에 묶으려 한다.

이 죄 많은 세상으로부터 우리는

어떻게 지옥불에 던져지는 형벌을 면 할 수 있겠는가?

 

그 답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해 얻는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데

이에 관하여는 책의 후반부에서 다루기로 한다.

 

캘리포니아 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