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주의 이야기(책)/창조주를 볼 수 없는 영적 장애(연재)

서로 사랑

사랑배달부 2020. 9. 8. 01:16

 

 

예배는 무엇인가?

 

막 12:29-3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 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막 12:3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마가복음에서 주시는 말씀은 첫째와 둘째 계명이 사랑이라고 말씀하신다.

첫째는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이며 둘째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이다.

이어서 예수님께 질문을 던진 서기관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후

예수님께 여쭌 말이‘마가복음 12:33’에 나와 있다.

마음을 다하고 지각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자기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를 드리는 번제 헌물과 희생물을 다 합친 것보다 나으니이다.

 

제사나 예배보다 사랑이 먼저임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사랑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삶 가운데 실천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모든 제사와 번제물 보다 나은 것임을 고백하고 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 온몸과 마음을 다하여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이다.

 

요일 4:7-11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 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영영 지옥 불에서 헤어날 길이 없는 우리를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리며 삶을 그분의 기쁨과 영광을 위하여 올려 드리는 것이 예배이다.

 

사랑이신 하나님을 닮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삶이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예배자의 삶이다.

 

하나님은 삶을 온전히 드려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자를 찾으신다.

 

창 4:3-6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 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경배는 사람의 창조된 본성에서 나온다.

그렇게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늘 절대자를 찾으며 구하는 삶 속에 있다.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으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에게 가인과 아벨 두 아들이 있었다.

가인은 농사짓는 자이고 아벨은 양 치는 자였다.

가인은 땅의 열매 중에서 헌물을 가져와 주께 드렸고

동생 아벨은 양의 첫 새끼들과 그것들의 기름으로 드렸다.

주께서 아벨과 그의 헌물에는 관심을 갖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헌물에는 관심을 갖지 아니하셨으므로

가인이 몹시 분을 내고 그의 얼굴빛이 변하니라고 말씀하신다.

 

말씀으로 미루어 보아 가인이 드린 제물의 중심에는 가인이 있음을 볼 수 있다.

가인은 자신이 시퍼렇게 살아있다. 제물을 받지 아니하시는 여호와께 감히 대적하고 있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기쁨을 위하여 순전히 드린 것이 아니고

그 제사를 통하여 가인 자신의 평안이나 유익을 구하고 있었을 것이다.

기대와는 다른 뜻밖의 상황에 심히 분개하고 있다.

동생 아벨의 제물이 열납 된 것을 시기하며 분을 내고 있다.

 

아벨은 양 떼의 첫 새끼들과 그것들의 기름 중에서 드렸고

그 제물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열납 하셨다.

우리는 여기에서 첫 새끼를 드린 아벨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그의 삶의 중심은 본인이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인 것을 알 수 있다.

소중한 첫 소산을 주님께 정성껏 준비하여 드린 것이다.

하나님은 그 마음을 기쁘게 받으셨다.

 

이 사건으로 가인은 동생 아벨을 들에서 쳐 죽임으로

첫 살인자가 되며 죄의 열매를 맺는다.

육신의 욕심으로 가득 찬 가인의 삶이

동생 아벨을 쳐 죽이는 죄를 범하며 사망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사 1: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수십 년간 교회가 양적으로 팽창을 하면서

한국교회는 미국 다음으로 선교사를 많이 파견하는 국가가 되었고

세계적인 대형교회들이 여기저기 세워졌다.

이 결과, 교회는 예상치 못한 경제적인 풍요로움을 맛보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교회의 개척 및 신학 지망생의 증가로 신학대학 역시 그 규모와 수가 크게 늘어났다.

전에 없이 교회는 교인수와 일 년 예산 등에 신경을 쓰게 되었으며

교인들을 보다 많이 유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나 세미나 콘퍼런스 제자훈련 등의

각종 교육프로그램들이 속속 개발되었다.

부모들의 넘치는 자녀사랑과 교육열은 교회에도 반영되어

양질의 주일 학교 프로그램도 경쟁을 하듯 개발되었다.

선교하는 교회라는 깃 발을 들고 교회는 장기 선교사 지원,

단기선교 프로그램 등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선교지에 따라서는 몰려오는 단기선교팀을 소화하느라

본래의 선교 활동과는 다른 방향으로 많은 활동의 변화들을 가져왔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홈리스 사역 등 각종 구제활동들도 펼쳐 나아간다.

 

이러한 양적인 풍요로 비교적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사역들이

하나님께는 가인이 드리는 헌물과 같지는 않은지 마음을 비우고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신학교 교회 선교단체 등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하여지는

각종 기관과 선교단체들의 활동이나 사역에의 중심에

하나님만이 계신지를 기도함으로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세상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음을 하나님은 말씀하여 주신다.

교회 재정의 풍요가 경쟁사회의 일면을 보여 주듯

교회의 산업화를 견인하여 가려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크나큰 재앙을 불러오게 될 것이다.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돈이 모이는 곳에는 사람들이 모이게 되어 있다.

건설현장에는 기술자와 노동자들이 모여들게 된다.

그곳에 일이 있고 그에 상응한 임금이 지급되기 때문이다.

권력자들의 주변에도 사람들이 모여든다.

해야 할 일 많이 있고 그들에게는 돈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권력자들은 이를 유지하기 위한 돈을 유치하느라 바쁘게들 움직인다.

돈이 많은 곳에는 일거리가 많고 그 돈을 끌어 쓰려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이러한 세상의 이치가 교회에 적용이 되거나 발을 붙이는 일이 없어야 한다.

 

성도들의 헌금은 하나님의 것이요.

오직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용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말씀을 벗어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믿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난 삶을 살아가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다.

말씀 안에 거할 때, 그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의 자녀로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하게 된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교회가 말씀에서 멀어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에서 멀어진다면 그 생명을 잃게 된다.

 

이 땅에 속한 그리스도인이나 그리스도의 교회는 없다.

그들은 다만 껍데기만 교회요 그리스도인일 뿐이다.

 

현대교회의 특성 중 하나로 교회의 세속화를 얘기할 수 있다.

교인들의 수평이동이 추세로 자리 잡으면서

교회는 알게 모르게 경쟁의 구도를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따라 각종 프로그램의 개발과 예배와 관련된 시설들이 경쟁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세상적인 기법이나 문화들이 슬그머니 자리를 밀고 들어와

교회 운영의 상당 부분을 이끌어가려고 한다.

 

죄 가운데 허덕이는 어둠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자들이

예수님을 만 날 수 있는 길은

그들이 세상적 기호를 좇아 교회 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인 사랑과 빛에 있다.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과 권능을 세상이 바라보게 될 때

그들은 그 빛과 사랑에 이끌리어 들어오게 될 것이며

길 잃은 양들이 회개하여 하나님 께로 돌아오는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요일 2:15-17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 느니라

 

세속적인 방송으로 빠르게 변해가는 기독교 방송을 바라보며 안타까움이 쌓인다.

생명의 양식이 되는 은혜로운 프로그램이 많기는 하지만 빠른 속도로 세속화되어가는 것이 눈에 보인다.

기독교방송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생명을 전하는 방송인데

날이 갈수록 시청률 증가를 유도하는 프로그램이 늘어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시청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잃는 일은 전부를 잃는 일이다.

세상에 접붙여진 방송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질 수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접붙여져 있을 때 복음은 전하여지고

그리스도의 생명이 살아나 죽은 영혼을 살리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나 그리스도인은

나와 주변의 사람들을 중심으로 삶을 꾸려가는 자들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이나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시다.

내가 세상적으로 비참해지고 주변 사람들을 마음을 뒤틀리게 할 지라도

세상의 것을 따라서는 안 된다는 것을 하나님 아버 지께서는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고 계신다.

 

세상이 하나님의 품으로 빨려 들어오는 신적 권위를

교회나 성도들은 언제나 지니고 있어야 한다.

신적 권위는 하나님께서

영적인 분별력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하여 일하심으로 나온다.

그들의 중심에 하 나님께서 살아 계시기 때문이다.

 

사 1: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말씀에서 헛된 제물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한다 하면서 악을 행하는 것을

하나님 아버지께 서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니

곧 엄숙한 모임 그 자체가 불법이니라고 말씀하신다.

 

우리의 예배 가운데에도 이러한 모습은 얼마든지 있다.

예배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예배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 대신 내가 자리하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게 된다.

하나님께서 예배의 중심에 계시지 않을 때,

예배는 형식적인 예배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예배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하여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아닌

우상을 향하여 드리는 예배로 전락하게 된다.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예배이다.

 

한 주간을 세상의 것들에 매여 살아가고 있다면

성경말씀에서와 같이 그들은 영의 눈이 가려져 하나님의 존재를 모르기 때문에

성전에서 예배를 받기 위하여 임하여 계신 하나님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게 된다.

 

예배시간에 늦게 도착하여 묵도가 시작되어 주악이 울려 퍼질 때,

대표기도를 하는 시간에, 성가대원들이 찬양을 하는 시간에,

심지어는 설교 중에 들어오는 교인들이 간혹 있다.

문제는 이들은 매주 비슷한 시간대에 교회에 도착한다는 것이다.

늦게 들어와 예배에 집중하기보다는 주보에 무엇이 쓰여 있나 뒤적인다.

더러는 늦게 들어오며 주위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악수까지 하는 자들이 있다.

핸드백이나 가방을 뒤적이며 소음을 내며 산만하게 예배 시간을 때우는 자도 있다.

이러한 동작이나 소음이 신령과 진정으로 온몸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께 드려져야 하는 예배를

얼마나 산만하게 하며 흐트러뜨리게 되는지는 영의 눈이 열리어진 자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반면에, 영의 눈이 가려져 예배 중에 임재하고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내가 예배의 주인이 되어,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보는 것으로 끝나게 되는 교인들이 있다.

친구들과 등산이나 낚시나 골프를 하러 갔어야 하는데

눈만 무겁고 이 게 뭐지! 하며 후회하는 자도 있다.

지난주에 주식으로 잃은 돈으로 속이 상하여 어떻게 만회를 하나 골머리를 앓는 사람,

술값 유흥비등으로 카드빚이 쌓여가는 것 등으로

불안하고 뒤숭숭하여 예배에 집중을 못하는 자도 있을 것이다.

 

예배는 보는 것이 아니라 드려지는 것이다.

예배의 주인은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 한 분이시다.

하나님은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기다리신다.

삶으로 예배하는 자를 기다리시며 찾고 계신다.

영과 진리로 드려지는 예배를 주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때

예배자는 예배를 통하여 은혜로 주시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평안과 위로를 경험하며 그분의 영광을 체험하게 된다.

삶 가운데 악을 행하고 죄와 더불어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다가

준비 없이 예배에 참석하여 시간을 때우는 자들을 하나님은 역겹다고 하신다. 가증하다고 하신다.

 

이러한 모든 현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그들에게 없기 때문이다.

이는 초신자나 불신자들 중에서만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교회의 리더들도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자들이 있을 수 있다.

어떻게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자가 교회의 중직을 맡으며

교회의 성직을 맡을 수 있느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는 거짓 교사 거짓 선지자 거짓 목자들이 엄연히 있다.

이들은 참 그리스도인이 아니요 참 성직자가 아니요 참 교회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누구인지 모르면서 신학교에 적을 둔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

또한 가르치는 교사도 성경과 관련 사실들에 대하여 전문적인 지식은 있으나

영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한 영적인 시각 장애를 가진 교사들이 있다.

이러한 것이 현실이다.

 

이러하다 보니 영적인 깨우침이 없는 자

혹은 목회자의 사명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지 아니한 자들도

교회를 세우고 일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껍데기뿐인 교회는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주님의 일이 아닌

세상의 것들과 섞여 세상일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기독교의 현실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불신자들로부터 비난과 조롱을 받는 처지로 전락하고 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도처에 사람들을 세우시고,

하나님의 일꾼으로 삼으시고,

이 악하고 패역한 세대의 빛으로 사용하신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며 영이신 하나님과 끊임없는 교제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어간다.

끊임없는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하여

하루도 말씀과 기도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하나님의 전사로 살아간다.

지금도 목회의 현장에서 선교현장에서 그들의 삶을 드려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을 위하여 헌신하고 있다.

 

마 23:23-28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 지니라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 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믿음이 좋다고 자부하는 그 시대의 영적 지도자 들이었다.

이들은 율법을 잘 알고 지키며 그것을 가르치기를 즐겨하던 사회적으로 안정된 그룹이었다.

이들의 믿음은 형식적이며 이들의 생활상이 부패하고

영적인 눈이 멀어있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시며,

이들을 질책하고 회개하라 외치신다.

결국, 이들은 자기들의 눈의 가시인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한다.

 

요즈음 교회의 부패와 타락이 그때와 다를 바가 하나도 없는 것이 아닌가?

교회의 영적 지도자들의 상당수가 바리새인이요 서기관들로 보면 될 것이다.

이들의 대부분은 말씀을 읽어도 영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다.

이들의 삶의 주인은 그들 자신이며 머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저 멀리 계시기만 하다.

이들은 외식하며 거룩한 지도자의 역할을 하려 하지만

그들의 삶과 마음에는 예수님은 떠나고 안 계시다.

예수님이 떠난 그들의 마음에 탐욕과 이기심 그리고 불법이 가득하다.

적지 않은 교회의 지도자인 영적 리더들이 지탄의 대상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성령의 역사를 훼방하고 있다.

 

누가 성령을 훼방하는가?

대표적인 것이 어두움의 권세를 잡고 있는 사탄과 마귀들이다.

이러한 타락한 영적 지도자들과 거짓 지도자들은

사탄의 하수인으로 커다란 죄의 회오리 안에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이들만의 잘못이 아니다.

이러한 현상을 묵인하고 방조하고 외면하는 교인들도 책임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교인들을 달래며 교회를 유지하려 하는 거짓 리더들의 잘못이다.

무엇보다도 이를 방관하고 기도에 매달리지 않는 성도들의 책임이다.

우리들의 피맺힌 회개기도의 함성이 온 천지를 뒤덮을 때

하나님은 그 기도소리를 들으시고 빛으로 사랑으로

이 땅의 각 사람의 마음에 임하실 것이다.

영적인 시각 장애자들을 만지시고 깨우시며 그들의 영의 눈을 밝게 하실 것이다.

그들을 새로운 생명으로 건지시고 생명의 삶을 살아가게 인도하실 것이다.

 

계 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이 말씀은 성령 하나님께서 교회에 하시는 말씀 중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말씀이다.

세상 것에 만족하며 부요함을 자랑하지만 그들의 영의 눈이 가려져

눈이 먼 것도 벌거벗은 가련하고 가난한 자인 것도 알지 못함을

책망하고 한탄하시며 회개를 촉구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회개치 않고 어두움을 헤매는 자에게

도적같이 임하실 것을 말씀하시며 깨어있으라고 명하신다.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계 3:19-21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 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신다.

열심을 내어 회개하라 하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바로 옆에서 서서 기다리고 계신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함께 만 찬을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으리라 말씀하신다.

이기는 자에게는 나 역시 이긴 뒤에 내 아버지와 함께 그분의 왕좌에 앉게 된 것 같이

내 왕좌에 나와 함께 앉는 것을 내가 허락하리라 말씀하신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사후에 천국에 가기를 바란다.

그래서 구원을 갈망하고 어려운 가운데에도 교회에 나아가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말씀에서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 그 보좌에 함께 앉게 되기를 갈망하고 있다.

그러나 어찌하여 수많은 대다수의 교인들이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순종의 삶을 살지 못하고 여전히 내가 삶의 주인이 되어 세상의 종노릇 하며 살아가게 되는가?

교회에 출석하거나 예수님을 믿는다 하는 많은 이들이

사탄의 노예가 되어 육체의 소욕에 따라 살아가느냐 말이다.

우리 모두가 안고 있는 크나큰 숙제이다.

 

하나님 앞에 서서 그분을 찬양할 자는 누구인가?

 

시 24:3-5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깨끗한 손과 순수한 마음을 가진 자 곧

헛된 것을 향해 자기 혼을 들지 아니하고

속임수로 맹세하지 아니한 자라고 말씀하신다.

이어서 이들은 주께 복을 받고 자기의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받으리니라고 말 씀하신다.

말씀에서와 같이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허탄한데 마음을 빼앗기지 아니하고

정직하고 거룩한 자, 마음이 청결한 자, 거짓 맹세치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의를 얻게 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은 삶이 경건하고 참되어야 함을 말씀하고 계시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이다.

 

롬 14:17-18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지 아니한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흉물로 보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도시마다 커다란 교회 건물들에 하나님의 영광이 빛이 퇴색되어 있는 듯하다.

 

하나님은 우리를 오래 참으시며 긍휼의 마음으로 기다리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모습 그대로 회복되기를 간절히 원하신다.

죄로 인하여 죽어있는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생명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을 알 수 없는 영적인 장애로부터 벗어나

맑은 영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마음껏 찬양할 수 있는 예배자로 우뚝 서기를 사랑으로 기다리시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여야 한다.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태어나 죽은 자의 삶에서 산 자의 삶으로,

이 세상에 속한 자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자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을 볼 수 없는 영적인 장애로부터 해방된 자로,

하나님의 복된 동산에서 영원한 삶을 살아가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