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주의 이야기(책)/창조주를 볼 수 없는 영적 장애(연재)

이 세상에 화가 없는 사람은 없다

사랑배달부 2020. 8. 3. 22:26

분노의 문제

이 세상에 화가 없는 사람은 없다.

화는 나를 보이지 않는 굴레에 묶어 두며 많은 위험과 문제들을 몰고 다닌다.

나의 경우 언제 화가 났었는지 회상해보자. 어릴 적이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 배는 고픈데 먹을 것이 준비 안 되어

허기진 욕구를 바로 채우지 못할 때 화가 났었던 것 같다.

구슬치기를 하거나 홀짝을 하여 구슬을 땄을 때는 기쁨이 충만해졌지만

잃었을 때는 슬픔과 함께 화가 났었다.

 

내가 감당할 만한 상대가 나를 괴롭혔을 때 화가 충천하여 대항을 하였 지만

매우 위협적인 상황이 다가서면 화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청소년 시절에는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현장을 보거나 신문기사나 영화를 보았을 때 화가 났고,

권력을 가진 자가 힘없는 자를 멸시하고 괴롭힐 때 화가 났다.

세계 도처에 전쟁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이산가족이 고 특히 여성과 어린이들의 인권이 유린되고 짓밟히는 상황이 너무 화 가 났고,

나의 기분이 상하게 될 때 쉽게 화를 내곤 하였다.

 생각해 보면 참을성과 분노를 조절하는 기능이 매우 약하였던 것 같다.

 

고등학생 시절이었다. 큰누님이 나에게 차분하게 타일러 주셨다.

‘쫑아 야, 이야기할 때 마음에 화가 있는 상태로 말하는 것보다 화를 다스리고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며 대화하는 것이 너에게 유익하며 참 중요한 것이야’라고.

막내 동생을 극진히 사랑해 주신 큰누님의 고마운 충고의 말씀이었다.

 

청소년기에는 ‘누가 나를 건드리기만 해 봐라’하는 겁이 없고 험한 마음을 품고 다녔다.

나를 건드린 사람이 없어서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나 의 성품은 법 없이도 살 수 있을 만큼 성실하고 정직한 외유내강이다.

이러한 모범생의 마음에 화와 독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나와 이웃을 비교하며 우월감으로 우쭐하기도 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다 도토리 키 재기이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지만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죄로 인한 형벌과, 아픔과, 좌절과, 분노와, 증오와, 슬픔들을 지니고 사는 것이다.

 

군에 입대하기 전 몇 년은 나의 일생 중 가장 어두운 시기이었다.

모범 생으로 장래가 훤히 보이는 듯한 시절이 있었는데 고2 여름,

나의 생일날 오랜 투병으로 고생하시던 어머니는 식구들이 아침식사를 마친 후

혼수상태에서 한번 깨어나시고는 한여름 장맛비와 함께 눈을 제대로 못 감으신 채로 숨을 거두 시었다.

아마도 아직 미혼인 두 딸과 이미 방황의 회오리에 휩싸인

둘째 아들과 막내인 나를 두고 가시기가 많이 힘이 드 셨나 보다.

이듬해 봄에, 아버지는 재혼을 하셨고 새어머니가 들어오셨다.

 

작은형의 방황은 더욱 깊어져 갔고

감수성이 예민한 성격의 나도 방황의 회오 리로 서서히 빠져 들어갔다.

이미 결혼한 세 누님들도, 그리고 어머니 없이 시집간 두 누님들도

많은 설움과 슬픔으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컷을 것이다.

 

고교 3학년 때부터 일그러지기 시작한 성적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재수, 삼수, 사수, 오수의 길에 접어들 쯤에 군에 입대하였다.

말이 삼수 사수이지 공부와는 담을 쌓은 지 오래되었다.

재수 시절 집을 떠나 신촌의 모 사설 도서관에서 잠을 자며 2년을 지냈고

그 후에, 큰 형님이 미국에 이민 갈 때 방 하나 세주고 간 집에서 홀로 생활하였다.

 

원래 집안일에 관심이 없던 나로서는 집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깨진 유리창이 그대로 있는 방까지 신발을 신고 들어가 이부자리 옆에 벗어 두고 자곤 하였다.

그 깨어진 유리창이 나의 찢겨 가는 마음을 대변하 고 있는 듯하였다.

 

대학에 진학한 친구들을 하루가 멀다 하고 번갈아 불러댔다.

나의 주 생활무대는 당구장과 볼링장, 술집,

그리고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무교동 낙지골목과 명동의 골목길이었고

자유분방하게 젊음을 발산하고 다녔다.

 

틈틈이 기차로 전국을 돌며 홀로 여행하였으며 기차 안에서 만난 사람 들과

이 말 저 말을 하며 세상을 알아가게 되었다.

이 시절에, 나의 심성은 거칠어져만 갔고 야수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살벌 한 분위기의 전투적인 삶을, 문란하고 방탕한 삶을 그렇게 살아갔다.

 

 일그러진 나의 삶은 나의 마음과 영혼을 무너뜨렸고

내가 생각해도 나의 본모습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나와 있었다.

이러한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시는 아버지는 나에게 시골에 가서

목축업을 해보든지 과수원을 하든지 하라고 권하셨고,

신학대학에 입학하여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전도자가 되기를 원하셨다.

아버지도 한때 목회를 하셨던 목사님 이셨고 기독교 학교를 운영하셨다.

 

이 시기에 화가 많이 쌓인 것 같다.

친구들과 비교하여 사회적으로 점점 달라지는 나의 모습에 화가 났고

변해가는 나의 몰골과 처지에 화가 났다.

한 달에 한번 집에 가면(학원비 등 용돈을 타기 위하여) 새어머니의 냉대와 냉소로 마음이 상하여

허전한 마음으로 며칠씩 방황하며 유흥가를 떠돌아다니며 달래곤 하였다.

돈이 떨어지면 당구장에서 담배와 짜장면 내기를 하여 허기를 해결 하 였다.

섬세하고 침착한 성품으로 당구는 동네에서는 상대자가 없을 정 도로 솜씨 있게 잘 쳤다.

화가 많아서 당구장에서도 가끔 시끄러운 일이 벌어지기도 하였는데

별 탈이 없이 순간들을 넘어가도록 하나님께서 그 와중에도 보호해 주셨던 것 같다.

패거리들과 싸움이 붙으면 백전백패에 엄청 다쳤을 테니.

 

그 시절에도 화만 없으면 친절하고 상냥하고 예의 바른 나의 본래 모습이 있었다.

본시 외유내강이 나의 성품이다. 약한 자에게는 한없이 약하고 강한 자에게는 한없이 강하였다.

어둡고 칙칙했던 방황의 세월을 지나고 육군 병장으로 제대할 무렵이 되니

나의 미래가 걱정과 근심으로 다가왔다.

곰곰이 생각하여도 내가 살아갈 길은 많이 늦었지만 공부밖에 없는 듯하였다.

 

군 제대 후 전문대학에 진학하여 마음을 다잡아 4년제 대학으로 편입학하였고 졸업 후에,

10대 대기업 중 한 곳에 입사함으로써 늦었지만 사회 적으로 커다란 회복을 시도하고 있었다.

 

이때 얻은 소중한 교훈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처지와 환경에 따라 어떤 상황으로도 갈 수 있는 것이로구나!

원래 잘난 사람, 못난 사람이 없는 것이구나.

 

어둡고 외로운 방황의 세월을 빨리 마감하려고 대학 졸업 후 직장을 구 하자마자 결혼을 하였다.

나에게는 여자들이 비교적 잔소리와 참견하는 마음을 많이 갖고 있다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잔소리에 특히 민감하여 잘 견디지를 못한다.

이로 인하여 잔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방어를 많이 하며 피곤하게 살아가는 성격을 갖고 있다.

결혼은 하고 싶었지만 잔소리하고 참견하는 여자와 평생을 같이 할 용 기가 나질 않았다.

대학시절 친구의 소개로 만난 지금의 사랑하는 아내와 교제하던 중

‘나는 결혼생활에 자신이 없는 사람이다’라는 말을 듣고 울던 아내의 모습이 떠 올려진다.

 

교제를 하며 아내의 성품을 알아감에 따라 내가 편안하게 같이 살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아내는 성품이 온화하고, 나서는 성격이 아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순종하는 성격이며 자신을 잘 내세우지 않는 겸손한 성품을 갖고 있다.

나 같은 사람도 결혼하여 자식 낳아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소중한 선물이다.

하지만 내가 아내를 하나님의 소중한 선물로 깨우치는 데는 수많은 세월이 흘러야 했다.

나의 날카롭고 까칠한 성품은 팔팔하게 살아 있어서

내 마음에 안 드는 아내의 생각을 책잡으며 마음을 아프게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화로 충만해진 나의 성품은 이따금씩 불같이 퍼부어 대 기도 하였다.

 

첫 아이가 아기였을 때 서울 인근에 조그만 아파트를 장만하여 살고 있을 때였다.

자동차로 출근길에 1시간 30분가량 소요되던 때이다.

평소보다 좀 일찍 퇴근하여 집에 갔는데 아내는 없고 문은 잠겨있었다. 화가 솟구쳤다.

근처에서 쇠파이프를 구하였다. 아파트 잠금장치를 파이 프로 두둘겨 부수고서 들어갔다.

조금 후에, 아이를 업은 아내가 돌아왔다. 이웃에 있는 친구 집에 다녀온 것이다.

들어오면서 출입문 잠금장치가 부서진 것을 보았나 보다.

당신이 늦게 오는 줄 알고 친구 집에 다녀오느라 늦었다고, 미안하다고 얘기한다.

그런 아내를 보자마자 나는 사정없이 화를 쏟아낸다.

아내는 얼마나 당혹스러웠으며 엄마 등에 있던 딸아이는 얼마나 공포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을까?!

 

다음날, 아침에 출근하며 보니 예상대로 아내의 편지가 양복 안주머니에 넣어져 있었다.

내가 화를 낼 때마다 너무나 힘들다고 하면서도 나를 화나게 하여 미안하다는 말을 곁들였다.

어떤 때는 내가 왜 화를 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어서

너무나 당황스럽다는 편지를 받아보기도 하였다.

 

참을성 많은 착한 아내 덕분에 이혼당하지 않고 여태 아내의 덕을 보며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일을 되풀이하며 내가 주님을 만나 변화되기까지 거의 30년 가까이 나와 살아준 것이다.

나의 가정을 지켜주고 아이들을 잘 키워준 고마운 아내가 고맙다. 우리 가정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화는 순간을 넘겨야 한다. 화로 인하여 온갖 사고가 일어난다.

조울증으로 인한 사고 우발적인 폭행과 살인 방화

이런 것들이 순간적인 화를 감 당치 못하여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실로 어이없는 일들이다.

 

갈 5:19-21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 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 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갈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 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성령을 따라 행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한다는 말씀이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른다.

이 둘은 서로 대적하는 관계로 공존하지 못한다.

육체의 소욕, 다시 말해서 육체의 정욕과 세상의 것에 마음을 빼앗긴 자들은

그리스도의 영이 그들에게 없어 성령의 인도함을 따를 수 없게 된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빛이시기 때문에 빛으로 어두움을 물리치시나 어두움에 거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볼 수 없는 영적인 장애로 인하여 그 빛을 알 수도 느낄 수도 없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받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

이를 위하여 기도와 말씀묵상을 통하여 육신의 연약 함을 극복해 나아갈 때

우리는 분노의 영도 물리치게 되며 주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된다.

 

성령은 어떻게 일하시게 되는가?

아담 이후 죄가 들어온 온 인류를 죄악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육신의 몸으로 이 땅에 보내셨다.

그분은 죄가 없으신 하나님인 동시에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오셨다.

아픔과 슬픔의 감정도 지니고 계시다.

 

그분은 하나님을 볼 수 없는 우리를 위하여 고난과 핍박을 감내하시고

병들고 가난하고 눌리고 소외된 자들을 맞아주시고

그들을 치유케 하시고 회복시키시며 사랑을 베풀어 주셨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화목제로 오신 것이다.

 

화목제로 오신 그분은 치욕의 십자가의 형틀에서 피와 물을 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순결한 희생양이 되어 죽으셨다.

그 후에, 사흘 만에 부활하시어 사망의 권세를 물리치시고 부활하셨다.

이 사실을 마음으로 믿어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원자로 영접한 자에게는

성령님께서 내 마음에 내주 하시게 된다.

 

우리는 죄로 물든 육신으로 인한 연약함으로

육신의 욕심과 세상을 주 관하는 사탄 마귀의 세력과 싸울 힘도, 이길 수 있는 힘도 없지만

믿는 자의 삶에는 성령님께서 그 삶을 이끌어 나가시며 나약한 나 대신 싸워 주시며 승리하게 하신다.

나의 생각대로 세상을 향한 삶을 좇다가 나의 모든 죄의 짐을 예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을 거듭 태어난 삶이라고 성경에서 말씀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거듭 태어난 자는 더 이상 세상을 기웃거리지 않는다.

육신의 욕심에 이끌리는 삶을 살아가 지 않는다.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어두움과 죄로부터 자유와 평화를 얻게 된다. 할렐루야!

이전의 것은 지나갔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된 것이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육체의 소욕으로 살아가는 것 중의 하나 인 ‘화’를 내지 않으며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분노를 다스리며 살아갈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 태어난 자들은 자기 영광을 구 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 가운데 있는 한 영혼, 한 영혼에 대하여 주님의 빛과 사랑을 나누며 살아간다.

적그리스도와 거짓 교사들 그리고 죄로 물든 육신을 입고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가려는 나와 영적인 전투를 치 루며 살아간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에서는 화에 대하여 어떤 말씀이 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엡 4:26-27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약 1:19-20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 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시 37:8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잠 14:29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잠 15:18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 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나를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삶을 따라갈 때

우리는 모든 어두움과 분노의 문제로부터 자유함을 얻고

그리스도 인으로서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함께 죽어

그의 영으로 살아가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내가 죽고 예수로 살아가는 삶에는 모든 관계의 회복과 치유가 일어난다.

 

예수로 살아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창조의 원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등을 지어 영이신

하나님을 볼 수 없는 영적인 장애로부터 회복되어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가 회복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다.

 

내 안에 살아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부부 사이, 부모 자녀 간, 시부모와 며느리, 장인 장모와 사위의 관계가 회복된다.

직장동료와 이웃과의 관계가, 교회에서 성도들과의 관계가 회복된다.

천국의 삶이 이 땅에서도 실현된다. 

라호야코브, 샌디에고 캘리포니아